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 여림 / 최측의 농간
여림
1967년 경상남도 거제시 장승포 출생, 1985년 서울예술전문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스승 최하림 시인의 이름 끝자를 빌려 필명을 여림이라 짓고 199년 '실업'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 등단하였으며 2002년 11월 16일에 타계하였다. 문우들이 시인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유고 110여 편을 바탕으로 유고시집 '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를 고인 1주기에 출간하였다.
최근 시집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직 후, 회사를 오가는 (편도)시간이 20분이 채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소설을 읽기에는 맥(?)이 잇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에세이에 눈을 돌리다가 시집에 손을 댔다.
나는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함축적인 표현들이 많기 때문이다. 함축적이라는 것은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말인데 스스로 해석하기를 귀찮아 해서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주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아주 가끔은 해석도 쉽고 마음에 와 닿는 시를 발견할 때가 있다.
여림은 따듯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시들은 어둡게만 느껴진다. 살았던 날들이 그러했으리라 어림짐작 해 본다. 그리고 서른 여섯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시집을 마치면서, 서른 초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김광석이 생각났다. 둘은 결국 '살아야할 근사한 이유'를 찾지 못한 듯 하다. 김광석은 결혼도 했었고, 많은 사람들에 둘러 쌓여 있었고, 여림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을 그리워했던 여림이 김광석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었다면 여림은 좀 더 살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p. 76 사람에게는, 때로 어떤 말로도 위안이 되지 못하는 시간들이 있다. 넋을 두고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본다거나 졸린 듯 눈을 감고 누웠어도 더욱 또렷해지는 의식의 어느 한 부분처럼
p. 95 사랑 안에 놓여진 징검다리를 보았습니다. 한 발을 잘 못 디디면 온몸이 물에 젖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한 번 물에 젖은 몸은 쉬이 마르지를 않고 오랜 시일 사막을 헤매 다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p. 96
-고독-
고독은 내적 밝음의 고독과 외적 어두움의 고독이 있다.
내적 밝음의 고독은 자기 성숙을 의미하지만
외적 어두움의 고독은 자기 상실을 의미한다.
선택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p. 158
'그런 말 하지마, 내가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귀중하고 값진 선물은 바로 너야.'
p. 195 나중에라도 결혼을 해서 평생을 마누라와 자식들 틈에 끼어 살 생각을 하면 지금의 이 자유스러움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나만의 시간이자 생의 유일한 시절이기도한 것이다. 어려서는 부모와 형제들 틈에, 장성해서는 아내와 자식들 사이에 이래저래 홀로이지를 못하고 치여 산다고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소름이 다 보록하게 돋았다.
어울려 산다는 것과 어쩔 수 없이 매여 산다는 건 이리도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개인의 철저한 자유와 혼자만의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어떤 창조적인 생각이나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사회구조에는 아무런 진보나 발전이 없기 때문일 거였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의 것이며 나는 그러한 삶의 주인이기를 위해 오늘도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생활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금껏 늦도록 야근을 감행한 것이다.
p. 200 그러나, 나는 지금의 이 길이 언젠가는 나를 저 높은 곳으로 이끌어줄 사다리가 되리라 믿는다. 지금의 이 작은 고통이 이윽고 저 안온하고도 따뜻한 불빛이 가득한 한 집으로 데려다 주리라. 그때까지 어떠한 고통도 나를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며 나 역시 그 고통의 허허바다를 온몸으로 헤엄쳐 나아가리라. 비록 그것이 허망하기만한 송장헤엄일지라도....
나는 이 길의 주인이며 동시에 이 길의 주재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