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아침을 마중하는 지혜] 선정도서 / 2013년 9월 14일 토요일
선정도서 투표에서, 알랭드 보통의 '불안'과 선두를 다투었던 터라 이 책을 '불안'과 동시에 구입했다. '불안'을 마치고 '자기 앞의 생'을 손에 쥐었다. 추천인의 추천이유때문에 나는 이 책에 한 표를 던졌다. 추천인의 추천 이유는, '어린 소년 소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책들을 좋아해서요..'였다. 요즘 회사업무도 바쁘고 해서, 단순히 서정적이고 재밌으면서 어렵지 않은 소설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제목 뿐 아니라, 책을 소개하는 책 뒷 면에서도 재밌게 읽을 소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열네 살 소년 모모가 들려주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생의 비밀!' 이라니..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 있을까. 하지만, 서너 장을 넘기는 순간 오산임을 깨달았다. 이런 '반전'이 있을줄이야. 지루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는 잘 쓴 소설로 기억될 것인데 반면, '아주 불편'했던 소설로도 기억될 것이다.
'슬픈 결말로도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라는 제목으로 조경란 소설가가 에필로그 남겼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이 제목에 걸맞다고 생각하는 소설은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왜냐하면, 아동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주공이 천적에게 물려 죽지만, 또 다른 생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소설을 마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보는 내내 '슬펐다'. 그리고 지루한 부분이 거의 없었다는게 인상적이다. 또 다른, 인상적인 부분은 주인공 모모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말하는 방식이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이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나는 한 아이의 성장소설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성장소설치곤 충격적이긴 하다. 보는 내내 불편했던 마음이 있었다고 했는데, 나와 같은 남자라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줄거리>
[자기 앞의 생]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열네 살 소년 모모가 부모가 버린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강제 수용된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지내던 자신의 생 중 어느 한 시기에 관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자신을 돌보아주던 로자 아줌마가 뇌혈증을 앓게 되자 이번에는 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상황이 달라지는 것,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 모모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모모는 자신이늘 궁금한 것이 있을 때면 찾아가는 하밀 할아버지를 찾아가 그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하밀 할아버지는 '너를 낳아준 사람이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너뿐'이라는 사실을 모모에게 가르쳐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모는 말한다.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라고. 하밀 할마아버지는 모모에게 들려준다. 이 세상엔 전적으로 희거나 검은 것은 없고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으며 또한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로자 아줌마가 이제 천천히 죽어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모모는 열다섯 살 때의 아주머니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건 지금의 늙은 로자 아줌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사진 속의 처녀는 앞날이 충만하고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이제 모모는 생은 그러한 것들로만 채워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파괴해가는 것은 다름아닌 '생'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했다. 로자 아줌마가 의식을 잃기 시작했을 때 모모는 아주머니를 아주머니가 평소에 사랑했던 방, 혼자만의 방, 무서운 것이 있을 땐 혼자 숨어들곤 했던 지하실의 방으로 데리고 간다. 로자 아줌마는 거기서 죽었고 그녀가 죽은 지 삼 주 후, 진동하는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사람들이 지하실 부수고 들어왔을 때까지 모모는 거기서 아주머니와 자구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모모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새롭게 살아갈 낯선 땅을 찾아가던 길에 모모는 문득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 들기 전에 해주었던 말을 떠올린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는 그 말을. 그리고 모모는 깨닫는다. 손에 쥔 달걀 하나,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 로자 아줌마를 죽인 것은 생이지만 그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도 바로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생'이라는 사실 또한. 그건 모모의 깨달음이자 곧 그 책을 읽는 우리들의 깨들음이기도 할 것이다다.
p. 28 그때 내 나이 벌써 아홉 살쯤이었는데, 그 나이면 행복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사색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법이다.
p. 32 바나니아 녀석은 아무래도 이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벌써네 살이나 먹었는데도 매일 웃고만 있었으니 말이다. @ 살아가는 환경이 여락한 아프리카의 웃는 모습이 예쁜 아이들을 생각했다.
p. 33 비로소 나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p. 58 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신 외에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다는 뜻이다. @ 라마단 : 이슬람력에서의 9월
p. 62 발길로 엉덩이를 차인다든가 하는 밖으로부터의 폭력은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안에서 ㅅ애기는 폭력은 피할 길이 없다.
p. 62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p. 72 나에게는 꿈인 것이 아줌마에게는 악몽이 되었던 것이다. @ 암사자 꿈, 입양
p. 99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p. 102 말해봤지 무슨 소용이겠는가? 겨우 서른밖에 안 된 그 젊은 친구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은 풋내기인 것을. @ 글이 달라진다는 것은 느꼈다. 점점 성장하는..
p. 108 하밀 할아버지는 두려움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군이며 두려움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기의 오랜 경험을 믿으라고 했다. @ 불확실성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고 어떤 책에서 본 기억이 있는게 그 말이 맡는거 같다.
p. 109 희망이란 것에는 항상 대단한 힘이 있다. 로자 아줌마나 하밀 할아버지 같은 오니들에게조차도 그것은 큰 힘이 된다. 미칠 노릇이다.
p. 109 그녀는 내게 말을 건네고, 희망을 일깨우고, 친절한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한숨지으며 떠났다. 나쁜 년. @ㅋㅋㅋ
p. 191 그 때 민족적인 대재난이 일어났고, 그 일로 나는 갑자기 나이를 먹게 되었다. 나는 몹시 자랑스러웠다. @ 성장하는 순간
p. 241 그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 독서모임. 꼭 독서모임이 아니더라고 서로를 나누는 모임의 중요성. 공동체의 강력함.
p. 241 나는 흥분했다. 모든 이야기를 다 쏟아버리고 싶어서 멈출 수가 없었다.
@ 암사자의 의미 : 새끼를 찾는 어미?
p. 287 벌써 몇 달 전부터 집세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관리인이 올라왔다. @ 이때, 4일 밀린 삼영빌딩 월세를 냈다.
p. 307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
p. 324 나는 정신적인 면에서 볼 때 항상 새로운 변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뛰어난 수단인 소설과 성생활 덕분에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결혼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 결혼한 다음엔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슬픈 결말로도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p. 349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였다는 사실은 1980년 12월 2일 로멩 가리가 프랑스에서 자살한 이후 발견된 유서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왜 에밀 아자르라는 가짜 이름의 오촌을 내세우면서까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해야 했을까...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가까운 이들은 슬럼프라고 말했던 그런 시간을 한동안 산 적이 있었다. 누구든, 자신의 이름을 부정하고 싶어지는 때가 있을 것이다. 새 이름으로, 새 인생을 살고 싶어지는 때가.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소설을 쓰고 싶었고 발표하고 싶었고 사람들이 새 이름에 거는 기대와 주목을 다시 받고 싶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으나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었다.
p. 353 진 세버그가 자살한 일 년 후 로맹 가리는 자신의 입 안에 권총을 넣고 방아쇠를 당겨 역시 자살했다. 그의 나이 66세였다.
로맹 가리가 셍전에 몹시도 사랑했던 그의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 아버지는 더이상 만들 것도, 말할 것도, 할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의 작품은 완성되었고, 그에게는 진행중인 작품이 없었다. 그는 내가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할때까지 나를 보살폈다. 나는 작년에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이제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떠났다"라고. 로맹 가리의 짤막한 유서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 이 책, 전체적인 느낌은 어때요?
? 이 책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어요?
?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적이 있었어요?, 참고 p. 307 거꾸로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어요?
? 모모가 손에 쥐고 있었다던 달걀이 의미하는 바는?
? 시대적 배경, 장소, 나치, 유태인
? 새 이름으로 새 인생을 살고 싶어지는 때가 있었는가. 참고 p. 349
? 스스로를 완전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보았나요? 참고 p. 353
? 로맹가리는 왜 에밀 에자르가 되고 싶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