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정 / 리영희 / 창비
[밝은 아침을 마중하는 지혜]의 선정도서다. 전기를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기억에 없으니..
이 책은, 책을 내는 변명으로 시작한다. 이 책을 낸 것은 독자들에 대한 도의적 의무감에서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7~80년대 민주화혁명을 한 젊은이들의 탄압 발단이 자신의 저서라는 것과, 그들이 저자의 삶을 알고 싶어한다는 이유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p. 6 내 저서의 독자들에 대한 도의적 의무감에서다.
p. 6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대와 80년대의 민주화혁명의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권력에 의한 탄압을 받은 법정에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비롯한 나의 저서들이 문제의 발단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가권력의 대리인인 검찰의 논고는 사건마다 나의 저서들을 열거하며 매도했다. 탄압에 굴할 줄 모르는 대학생 피의자들 또한 올바른 문제의식과 비판 정신을 갖게 된 정신적.지적.사상적 영향으로서 나의 저서를 지적했다.
p. 7 나는 그들이 내 삶의 일부분인 것과 같이 나도 그들 삶의 일부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p. 7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의 질과 내용과 방향에 일어난 변화에 일단의 책임이 있는 나의 삶에 관해서 알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나의 삶과 살아온 과정을 그들에게 고백할 도의적 의무를 느끼게 되었다.
p. 162 일본도를 차고 올라온 대대장이 백선엽 대령이라는 것을 알았다 @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p. 167 박정희라는 장교가 검거되고, 그게 자공한 명단을 토대로 수많은 장교들의 희생되었으며,..
p. 175 그 당시, 나와 비슷한 연령의 젊으이로서 그와 같은 침체된 상황에 견디지 못해 그 생존조건을 박차고 나와, 대담하게 반향전환을 했거나 새로운 형태의 삶을 찾아 몸부림친 경험을 한 이를 만나면 나는 늘 속으로 부끄러워했다. 그 사람의 몸부림이 마침내 성공으로 보답되었는지 원점에의 희귀로 끝났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처럼 젊은이다운 모험심도 없이 치욕적인 '국비' 생존의 환경에 길들여진 채 뛰쳐나올 생각을 못하고 4년을 지낸 자신이 너무도 무기력해 보였기 때문이다.
p. 176 어떻게 그처럼 상황순응적이었던가 스스로 의아스럽다. @ 나도 상황 순응적
p. 307 그들에 대한 노신의 따스함을 나는 도저히 따를 수가 없다. 그난 나와 나의 부모, 동생이 그들과의 관계에 경험한 것 같은 현실적 비참을 체험하지 못한 탓이라고 해석하면서 자위하게 되었다.
p. 327 6.25 전쟁 기간의 군대(그후에 나아졌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사회는 일본 군대식의 야만적인 린치(폭력)가 어디서나 일상생활처럼 되어 있던 것이다. 무슨 정당한 이유나 목적이 뚜렷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분풀이, 화풀이 심지어 즉흥적인 장난으로 부하들을 구타하는 것이 예사였다. 한심하고 통탄할 상태였다.
p. 355 그런 고생을 하면서 왜 출입처를 나가 쉽게 돈이 생기는 경제부.사회부.정치부 등으로 옮기지 않았을까? 군대에서도 그토록 고민한 같은 괴로움으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소위 '부르주아적 양심'이라는 것이었을까? 과감하게 흙탕물에 뛰어들지 못하는 비겁이었을까? 30년이 지난 지금도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질문이다. @ 이런 내용은 독자에게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게 아닐까.. 자만심이 아닐까..? 어쩌면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비판적인 태도로 글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p. 363 자식의 성미가 급하고 너그럽지 못하며, 말과 행동이 가파르고 곧아서 상대방의 말이나 생각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자기를 높이고 오만해서 세상 살아감에 있어 실패가 많겠다. 수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저자의 아버지 말처럼 이 책에서 저자는 자기를 높이려는 생각이 드러난다..
p. 366 자존자대.. @ 나도...
p. 373 조지아 주 법은 흑백인의 동승을 불허한다.
p. 414 나의 손으로 자유당정권의 밑뿌리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정말로 삶의 희열이었다. @ 정말 저자에 의해서 자유당정권의 밑뿌리가 그랬던 것일까..
p. 419 나는 몸에서 피가 역류하고 분노에 온몸이 떨렸다. 기사쓰다말고 구경 나온 기자, 그것도 취재기자도 아닌 '외신기자'는 직책상 현장과는 무관한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언제 방관자의 대열에서 뛰어나왔는지, 로터리 조금 지난 산업은행 건물 앞.. @ 독자에게 이런 생각을 심어줬으면 좋았을것 같다. 나는 이런 대단한 사람이라고 뽐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도 그러면서 남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까..?
p. 443 나는 이순간의 나의 결심과 행동에 대해서 지금도 이성적인 설명을 할 수 없다. @ 이와 같은 자신의 심정을 적은 문자도 왜 내게는, 자신을 뽐내려는 글로 보이는걸까..
p. 447 나의 어리석었던 실패작이 그런대로 그곳에서 군과 군중 사이에 예정됐던 충돌의 '인연'을 빗나가게 한 '우연'적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착각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p. 465 새벽에 나가는 직장 일은 오후의 여가를 주었기 때문에 착실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이 시기처럼 많은 책을 읽은 때는 나의 평생에 없다.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고, 구름에 가렸던 문제가 제 모습으로 보이게 되었을 때는 희열감에 도취되었다. 그때까지 일종의 열등의식 같은 것에 번민했던 심리적.정신적 소극성도 털어버릴 수가 있었다. @ 통로님이 올려준 사진이 생각난다. 책을 보지 않을때, 많이 봤을떄, 아주 많이 봤을때..
p. 479 4.19전부터 1년 가까운 기간을 나는 정말 공적인 관심에 '신들린' 사람처럼 몰두했다. 가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거의 해본 일이 없었다. 나의 편향적 삶은 어머니에게나 아내에게 큰 고통이었음이 분명하다.@ 신들린 사람처럼 몰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잡고, 나중에는 내집마련도 할 수 있었던것 아닐까..
p. 511 왕년의 대일본제국 황국군 오까무라 중위가 갑자기..
p. 511 어느 것이 박정희의 진짜 면목인가? 나는 끝내 이 의혹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한 채..
p. 524 이렇게 힘들여 진실을 취재한 이 기자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내보내시오.
p. 527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잊을 수 없는 감정'이 생겼다. 그럴수록 박이라는 인간이 도량이 넓은 위인이라면 나 같은 기자도 초대하여.. @ 본인도 마찬가지 아닐까..
p. 545 박정희 정권때 집필한 글에 대한 댓가는 가혹했다. 언론사와 대학에서 각각 두 차례씩 네 차례나 해직됐고 다섯번이나 구속됐던 것이다.
p. 546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고백할 '도의적 의무'를 느껴 집필한 책이다. 하지만, 집필 당시인 80년대까지의 삶 전체를 다루지 못하고 기자 생활을 시작한 초기인 1963년에서 멈춘다. 집필 도중에 다시 구속되이는 우여곡절을 겪은 탓이다.
p. 550 어째서 이 나라에서는 인간말살의 범죄가 공비나 빨갱이라는 한마디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 이것이 이데올로기의 광신 사상과 휴머니즘에 대한 멸시를 깨쳐야겠다는 강렬한 사명감 같은 것을 느낀 계기..
p. 555 박의장 쪽은 귀국 후 청와대에서 연 수행단 위로연에 선생을 제외시키는 것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박정권의 가혹한 탄압의 전주곡인 셈이었다. '역정'은 이 지점에서 끝이 났다.
p. 556 주사조차 무서워하는 선생이 네 번의 해직과 다섯번의 투옥, 그리고 수사기관의 끔찍한 고문까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의분이 있었기 때문일 터다. ..
요즈음 우리는 걸핏하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임을 내세운다. 하지만 선생과 같은 이들의 투쟁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은 너무 쉽게 잊는다. 선생은'대화'의 서문에서 독자들에게 자신이 그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가치판단하고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 보고 자기비판적 대화의 기회로 삼아보라고 청했다. '역정'의 새로운 독자들에게도 선생을 대신해 요청하고 싶다. 젊은 리영희와의 대화를 자기성찰적 대화로 이어가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