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문서보다 동작하는 소프트웨어

일반서적

나의 한국현대사:1959-2014, 55년의 기록/유시민/돌베개

꽃게장세트 2016. 1. 17. 00:02


나의 한국현대사:1959-2014, 55년의 기록/유시민/돌베개

​다시 읽는 '나의 한국현대사'이다. 작년에 읽고 다시 넘겨 보았다. 내가 최근 현대사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스스로 무지하다고 생각해서다. 현대사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도 무지하지만 현대사가 더 끌리는 것은 9페이지가 대신 말해주고 있다.

page. 9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은 현재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주역들이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 그들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왕처럼 느긋하게 대하지 못한다.


page. 332 권력자는 역사에 자신의인격을 각인한다. 한국현대사에 가장 뚜렷한 인격의 각인을 남긴 지도자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러나 때때로 아무 지위도 권력도 없는 사람이 역사에 자신의 인격을 각인하기도 한다. '영원한 청년 노동자' 또는 '노동열사' 전태일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도 권력자는 아니었지만 우리의 현대사에 인격을 각인했다. 그러나 그분들에게는 가톨릭과 불교라는 종교적 배경이 있었다. 전태일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스물두 살 청년 노동자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책자를 껴안은 채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온몸이 불타는 고통 속에서 그는 외쳤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전태일은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타계할 때까지 40년 세월을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았다.

page. 335 전태일 이전에도 전태일 이후에도 억압과 착취에 항거하면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역사에 전태일만큼 뚜렷한 각인을 남기지는 못했다. 전태일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분인했다. 그는 평화시장 노동자들 가운데 급여수준ㅇ 가장 높은 재단사였다. 다른 유능한 재단사들은 돈을 모아 양복점을 내고 사장이 되는 것을 꿈꾸었고 실제 그렇게 한 사람이 많았다.

page. 335 타인의 생명과 건강과 복지를 위해 사진의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행위다.




책과 만나는 토요일 오후(책토오)에서 독서모임 회원을 모집합니다.

관심있는 분께서는 책토오를 찾아주세요.^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