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전 즈음, 반 고흐 미술 전시회에 다녀오기 며칠 전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었다. 이 책은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담은 책이다. 책 중간중간 반 고흐의 그림이 실려있다. 이번에는 폴 고갱의 전시회에 다녀올 예정이라서 '폴 고갱'을 보았다. '폴 고갱'은 폴 고갱의 그림을 해석하고 설명한다. 당시 폴 고갱의 심리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어떻게 그리게 되었는지, 어떤 심경을 갖고 그렸는지에 대해서 차근차근 풀어주고 있기 때문에 그림에 대한 이해가 한결 수월했다. 미술품 전시회는 반 고흐 전시회가 처음이어서 그런지 어색함이 있었다. 폴 고갱 전시회에서는 덜 어색함을 느끼길 바란다.
반 고흐에게서는 순수하고, 선하고, 겸손함을 느낄 수 있지만, 폴 고갱에서는 그 반대되는 느낌이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이기적이고 교만한 면들을 보았다. 폴 고갱을 보기 전에는 내 선입견이려니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선입견이 어느 정도 맞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p.7 그는 그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체험하기를 원했다.
p. 10 세상에서 낙오되어 도시를 떠도는 남자와 가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은 양립할 수 없는 법이다. 같은 해에 고갱은 예술가도 책임감 있는 가장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조각가 오베와 그의 아들>(9쪽)이라는 초상화를 그렸다.
p. 23 고흐는 고갱을 높이 평가했다. ** 하지만 고갱은 고흐를 낮게 평가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인정하지 않았다.
p. 23 고갱의 말은 까칠했다. 실제로 이 두 화가는 각장의 길을 떠난 지 이미 오래였으므로 보다 심오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p. 24 고갱은 고흐를 낭만주의자로 자신을 원시주의자로 보았지만, 셀제로 고흐의 예술은 고흐만큼이나 열정적이고 격렬하다. 고흐는 뼛속까지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p. 26 하지만 고흐의 귀 사건은 고갱의 이기적인 성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태도는 예술가로서 고갱의 삶 전체에 드러난다. 그는 항상 어떤 대상에 대해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삶과 예술의 일치를 인생의 목표로 삼았지만 고흐보다 진지하지는 않았다.
p. 62 <설교 후의 환영>고 ㅏ달리 <저승사자가 지켜본다>가 상당히 호평을 받앗다. 단번에 흠뻑 고취된 고갱은 자신이 마침내 '근대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았노라고 메테에게 편지를 썼다.
그의 성공을 향한 목마음은 남태평양 모티프를 고집하는 태도에서 가장 분명하게 읽힌다.
p. 65 열대에 대한 그의 비전이 독선으로 흘렀던 것이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를 유럽게 묶어둘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한 분노한 인간이 유럽을 떠났다.
p. 67 고갱이 세상과 좀더 잘 어울리려고 노력했다면 존재가치를 인정받았으리라는 것이다.
p. 68 고갱은 친구의 비판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고갱 역시 자신을 천재로 보이고자 노력했다. 더불어 스스로에게 순교자의 가변을 덧씌웠다.
p. 71 노동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한 당시 서양인들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p. 73 그가 파리를 떠나기 직전 매독에 걸렸던 것이다. 그는 이제 그토록 사랑하는 천국에 문명의 요상한 이기 하나를 들여온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폴리네시아사람들에게 그 병을 옮기고 있는 자신을.
p. 76 이번에는 수난자가 아닌 창조자의 역할로서 화가는 자신을 또다시 기독교의 신과 동일시하고 있다.
p. 82 고갱은 의욕을 되찾았다.( 작품이 고가에 팔리면서... )
p. 85 요컨데 고갱은 타히티를 삶의 보람으로 여겼어야 했다. 그는 인정받고 접대 받기를 즐겼고,
p. 86 그 특유의 충동적이고 무례한 감정 폭발로 하여 스스로는 평화롭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자기 모순을 드러낸 것이다.
p. 88 고갱은 바로 이런 차림으로 법정에 선 적이 있는데, 탈세 때문이었다. 그는 판사에게 자신은 야만인이므로 세금을 낼 수 없다고 우겨댔다.
p. 91 스스로 야만인이 되려 한 그의 노력은 실패했지만, 바로 이런 통찰이야말로 <야만의 이야기>를 그의 진정한 유언으로 만드는 힘이다. 자살 시도 전에 유언으로 그린<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
고갱은 진심으로 열대세계에 대한 자신의 애정과 원주민들의 필요와 희망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했다. 말하자면 역 선교였던 셈이다. 그는 이들에게 전향되기를 원했다.
p. 그로고는 곧 숨을 거뒀다. 그 목사의 말에 따르면 원주민들은 고갱의 죽음에 통곡했다고 한다. '고갱이 죽었다.! 우린 길을 읽었다!'
......
고갱은 자신의 승리를 맛보지 못하고 떠났다. .. 그가 영원히 벗어나고자 했던 그 혐오스럽고 모순 가득한 세상도 그 세상이었다. 또한 문명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도 고갱 속에서요, 자신에 대한 그의 거부 속에서였다.